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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과 실행/오늘

210503, 평화로운 평산의 낮

바깥 풍경을 한적하고 조용하게 보낼 수 있는 곳으로 카페를 떠올린다면 <생각의 계절>이 제격이다. 서점도 아닌데 읽어볼만한 좋은 신간이 카페 안쪽의 작은 책장에 마련되어있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읽을 책을 가져갔다가 늘 책장에 꽂힌 책등의 제목들에 홀려 한 두 권을 꺼내게 된다. 

차분하고 무심한 고양이들이 풍광좋은 테라스에 평화로움을 더해주는데, 오랜만에 만난 아이가 오늘따라 다리에 몸을 스치기를 여러 번이다. 사람도 애정을 갈구할수록 손길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존재라면 좋을텐데, 생각하면서 부비댈수록 손빗질을 해주고 근육이라고 파악되는 부분을 주물럭주물럭 해주었다. 이제 내 차례고, 안고 싶어하는 내 욕구는 나의 무릎에서 어리둥절해하면서 내려가는 행위로 거부당했다. 

 

오늘은 여행 이후의 마음을 정돈하고 싶었다. 실은 여행에서의 시간들이라기보다 여행으로 촉발된 여러 상황과 감정, 그 이후의 나의 상태에 대한 정돈이 필요했다. 어제는 여행의 간단한 후기가 오가면서 숨어있던 심경들이 드러나거나 고조되었고, 즐거운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게 마땅한데도 한심하고 우울하고 슬픈 내가 되어야했다. 부지런히 적은 아침 기록에도 적은 내용을 여기에 반복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 아닌 블로그에 일기를 남기면서 감정과 하루를 스스로 소비하지 말겠다고 다짐한지 일주일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여행이라는 '휴식기'를 가지면서 해야할 일들을, 명확히는 했으면 좋았을 일들을 일을 시작해야할 월요일에 한가롭게 시작하고 있다. 마음이 편한 나를 자책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생산적이다.

 

생산적임에 대한 자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일기를 써야하는데 자꾸 에세이를 쓰려고 하는 나의 욕구는 어쩌면 좋은가. 이에 대한 이야기는 건너뛰어야만 한다. 전 날까지 알차게 보냈고, 늦게 자서 피곤했고, 그러면 나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당위를 얻는다. 정하지 않았지만 내가 움직이는-사고'하게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아침과 운동, 감정에 관한 이야기는 노트에 적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일기에 장황하게 반복하다가는 나는 동기화 기계가 될 테니까. 나중에 동기화 기계가 되는 인간에 대해서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들고 다녀도 여러 이유로 책을 읽기는 쉽지 않은데 역시나 오늘도 들고 온 책을 읽지 않았다. 대신 여기 카페에 있는 책을 들었고, 심지어 기억하고 싶은 내용은 만트라처럼 필사를 하고, 끝까지 읽었다. 김하나 산문 <말하기를 말하다>. 언젠가 인스타그램에서 누군가의 선호표시를 본 것 같아서 집었다. 본래 목적인 감정 정리라든가,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안 오고 계획도 없었지만 뭔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들고 싶었던 계획들이라든가, 여행 이후 적고 싶은 생각들 같은 것을 우선적으로 하지 못했지만 평안하다. 아침 기록을 쓰고,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책 한 권을 읽어서 뭐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일단 날씨가 너무 좋고, 여기도, 나도 안정된 상태다. 집에 가면 훅 들어오는 환경에 달라지는 나의 상태가 또 걱정되지만.

 

*수시로 변화하고, 이동하면서 또는 역할이 바뀔 때마다 맞아야하는 환경에 나의 중심을 잃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을 기르기

*고양이는 너무 아름다워! 오래 전부터 몇 번이나 상상하고 계획한 새로운 목표가 또 생겼다!!!

*인스타를 대체하기 때문에 사진을 올리는 것이 중요 포인트인데 사진을 옮기기가 너무 귀찮다. 보정도 귀찮은데 예쁘게 기록하고 싶어!

 

18:26

 

그러나 보정을 안했다. 

 

하늘과 벽, 바닥과 매트 색의 전체적인 색감이 예뻐서.
좋아하는 평산의 산과 산으로 난 길과 집과 바다풍경

 

23:22